푸른 바다 같던 하늘이 석양에 걸려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내고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어둠이 사위에 잦아들 때 공중정원 한 켠에 별 꽃으로 자리한 너는 눈부시다. 137억년 숨가쁜 여행 끝에 생명의 나그네로 푸른 행성 지구 서호주
표면에 서서 생각 안에 갇혀 너를 보는 나는 눈물겹다. 미리내 강가의 연인처럼 꿈 같은 해후를 하며 마주하기 위해 너와 나는 137억 년을 달려왔다. 힘의 균형을 위해 하늘정원에 별 하나 띄우면 내 마음에 생명의 꽃 피어난다. 길이 없어도 너는 빛으로 달려오고, 나는 생각의 길로 달려간다. 너는 생명을 꿈꾸는 애벌레처럼 지상의 시를 노래하며 하늘에서 애를 태우고 나는 어머니 자궁 속 같은 너를 향해 하늘 닿게 걷고 싶어 땅 위에서 애를 태운다. 애달파 지쳐 고단한 육신 바람맞은 풀잎처럼 사막에 드러누이고 밤이 깊어갈수록 두 눈은 숨쉬는 별빛을 쫓아 쉼 없이 밤하늘을 두리번거린다. 하늘강가에서 바람과 빛과 생각의 길을 따라 적막 속에 오랜 침묵의 대화 향기 퍼지고 묵시록의 샘이 가득 차 넘칠 무렵 다가오는 새벽이 아쉬운 연인처럼 미완성 연가를 남긴 채 이제는 돌아서야 할 시간 서리꽃 피는 사막의 새벽이 찾아오면 밤사이 화려했던 너는 찬이슬로 마감한다. 나는 너를 만난 시간과 공간의 얼굴을 기억한 채 깊은 침묵의 향기로 마감한다. 137억 년 만에 만난 우리 무엇으로 다시 만날까? 네가 내 가슴에 없어지는 날 문명에 튜닝 된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 여겨지는 날 소슬한 바람 불어 그리움이 사무치는 날 나는 너에게로 길 없는 길을 찾아 떠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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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 게시판
너와 나 마주하기
원문 · https://new.mhpark.or.kr/board/freeboard/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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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탐사록 - 여섯째날
💬 댓글 9개
멋진 시예요.
구도자는 뜨거운 감동과 큰 질문을 가슴에 품지만, 그가 걷는 길은 차가운 고독과 냉정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언젠가 스스로 별이 되실것 같아요. ^^*
가슴에 신금을 울리는 글이네요,
이를땐 댓글 한줄조차 쓰여지지않고, 짠한 가슴 쓰다듬고 있을뿐,,,,
‘길이 없어도 너는 빛으로 내게 달려오고,
나는 생각의 길로 너에게 달려간다.‘
‘바람맞은 풀잎처럼 사막에 누워... 쉼 없이 밤하늘을 두리번거린다.’
시 감사드려요!!
길 없이도 달려온 너를 내 생각의 길로만 헤아리는, 나의 시선을 넘어서 보려고...합니다.
가보지 못한 그곳의 느낌을
한 편의 글로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멘토님의 또 다른면을 보게 되네요 여성 못지않은 감수성이 부럽습니다 ^^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보다 훨씬 헌신적인 풀
이 풀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포악한 토끼
불쌍한 풀을 먹는 나쁜 토끼를 벌하고
풀을 보호하여 결국 토끼의 멸종을 막는 늑대
늑대를 잔인하다고 평하는 우리의 모습
모피털 입고, 악어걸치고
자연상태에서는 단1일도 살지못하게 육종 변종된 애완견을 안고
보신탕으로 사라지는 견들을 불쌍하다도 핏대올리는 BB
비일관성
이 비일관성이 우리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먹으면서 도덕적으로 괴로워 하는 유일한 동물
자연 과학 공부하고 이런 글 쓰게 되셨나요?
원래 그러셨나요? 우문이죠. 원래 그런건 없다는것 같은데ㅡ 글이 살아서 뭉실거려요. 힘, 힘, 힘이 넘쳐서 읽는 사람의 시냅스에도 막 전달이
박문호박사님과 자연과학을 만나기전에는 글을 써본 경험이 없습니다.
박자세에 남겨진 글이 제 인생에 쓴 글의 90%이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의 어색함을 무릅쓰고 무슨 글이든 자주 박자세에 써봅니다.
제 생각이 흐르는 대로 머리속에 단어가 떠오르는 대로 써봅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박자세에서 만큼 글을 쓸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글도 서호주 사막에서 비박하며 별을 바라볼때 느꼈던 감상을 나름대로 써 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형태의 글은 처음이라서 제나름대로 어색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한다는 기분으로 거리낌 없이 과감히 썼습니다.
써놓고 보니 시라고 하기에도 부족하고,
수필이라고 하기에는 더 더욱 이상하고
아무튼 무엇을 의도하였건간에 제 생각과 감상을 글로 옮기는 훈련을 시도때도 없이 한다는 게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다시 읽었습니다
참, 명문입니다.
士別三日이면 刮目相對라.
선비가 헤어지고 삼일이면 눈을 씻고 다시 볼 정도로 발전해야 된다는데..
가속도가 붙은 멘토님을
어찌 따라 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