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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말하기 전에만 내 것이다. 말하고 난 다음에는, 내 입을 떠난 말은 듣는 사람의 것이다. 그것도 듣는 사람의 심리에 달렸다. 사람 간의 대화가 왜 어려웠는지? 왜 그렇게 오해를 불러왔는지? 왜 확증편향으로 상대의 말을 해석할 수밖에 없었는지? 저 문장 하나로 단박에 정리가 되어버린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 거인의 눈높이로 세상을 볼 수 있다. 범인은 땅바닥에서 10년을 헤매 봐야 겨우 오솔길 정도 발견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숲 꼭대기에서 지평을 바라보는 거인의 시야를 따라가면 각찰(覺察)할 수 있다. 거인들의 뒤를 따를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화는 반드시 상대방을 앞에 두고 해야 가능하다. 혼자 하는 대화는 독백일 따름이다. 앞에 있는 상대와 대화를 할 때는 내 표정, 제스처 등 비언어적 표현으로 80%를 전달한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 보고 있다. 앞에 있지만 서로 먼 산을 바라보고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바로 대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화의 세계 90%는 말투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말은 듣는 사람의 정서로, 감정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표정 및 제스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다. 말을 포장하는 형식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듣는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지배해 버린다. 대화는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다.
이 분위기는 바로 우리 몸의 자율신경이 바탕이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 내 몸의 상태와 컨디션이 대화의 질을 결정한다. 이 컨디션을 바로 자율신경이 지배하고 조절하고 있다. 대화도 바로 내 몸 상태로 귀결되는 것이다. 지난밤, 숙면을 취하고 출근길에 예전 듣던 노래도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면 출근길이 기분 좋고 활기차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회의에 들어가면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다. 설사 안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좋은 일로 바뀔 것이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내 몸의 상태와 대화를 할 상대의 몸 상태에 따라 대화의 심리학은 조율을 한다. 그중에 상대의 심리학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함은 자명하다. 이미 말은 나를 떠나 상대방의 심리와 융합을 하기 때문이다.